빅토리아주 한인회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서다.
호주 빅토리아주 한인회관 앞에 세계에서 10번째 '평화의 소녀상'이 섰다. 빅토리아주 한인회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서다.

14일 빅토리아주 한인회관에 여성인권과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가진 200여명이 모여 ‘평화의 소녀상’을 맞았다.

11월 14일 해외 10번째, 호주 2번째 '평화의 소녀상'이 호주 멜번 빅토리아주한인회관 앞에 섰다.
호주 멜번 빅토리아주 한인회관 앞에 선 ‘평화의 소녀상’ 해외 10번째, 호주 2번째 ‘소녀상’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제2차 세계대전시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기리며 전쟁 중 성폭력 재발 방지와 평화를 기원하는 동상으로 전쟁 당시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한복을 입은 10대 소녀의 모습이다. 멜번 소녀상은 한국을 제외한 해외에서 10번째, 호주에서는 2016년 시드니에 선 소녀상에 이은 두번째이다.

제막식은 ‘소녀상’ 건립까지 ‘멜번 평화의 소녀상 건립 위원회(멜소위)’ 활동 보고, 조춘제 멜소위위원장, 정미애 ‘화성시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서철모 한국 경기도 화성시장, 김서원 빅토리아주 한인회장, 윤미향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축사, 빅토리아주 한인동포의 노래 공연과 학생들의 편지 낭독으로 이어졌다.

제막식 중 조춘제 위원장은 소녀상 제작을 지원한 화성시와 멜번 소녀상 추진 시작부터 많은 도움을 주었다며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실천 추진위원회’에 감사를 전했다. 시드니 소녀상은 경기도 성남시 민간단체에서 제작을 지원했고, 멜번 소녀상은 화성시 민간단체인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에서 화성시민과 기업이 모은 기금 약 3000만원으로 제작됐다. 정미애 위원장은 떡볶이, 미숫가루, 식혜 판매를 통해 기금을 모금했고 화성시 기업인과 농업인도 많이 기탁했다고 밝혔다.

제막식에는 정미애 위원장과 함께 소녀상 건립 기금에 기여한 화성상공회의소 박성권 회장, 농협 화성시지부 홍경래 지부장도 자리를 같이했다. 정미애 위원장은 “2014년 화성시에서 시작해 토론토, 중국 상하이에 이어 멜번에 오게 됐다”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있고 여기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소녀상이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이러한 메시지가 “전세계인들의 가슴에 전해져 오래도록 간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의연 이사장은 “호주는 얀 오헌 할머니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고 축사를 시작했다. 윤이사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할머니들이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후 “74년동안 이 여성들이 전쟁의 고통을 감내할 때 그들 옆에 우리는 없었다”며 “전쟁 중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세계가 무관심했기 때문에 피해가 계속됐다. 우리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윤 이사장은 그러나 “우리는 응답하기 시작했다. 전쟁 중 희생당하는 여성과 아이들의 삶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러한 “응답이 평화의 소녀상으로 세워졌다”고 말했다. 또한 “기억이 멈춰지지 않는 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보상하고 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호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이사장은 우간다와 콩고, 코소보 내전 성폭력 피해자들이 ‘위안부’ 생존자 김복동 할머니에게 “우리의 마마.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한다며 “평화의 기적이 멜번에서 시작되어 세계를 가득 채울 때 할머니들이 꿈꿨던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로 2017년 여성인권상을 수상했고, 상금 5000만원을 무력분쟁 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활동을 위해 ‘김복동 평화상’을 제정하여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했다.

호주 ‘위안부’ 피해자 러프-오헌 여사 자손 3대 참석

이어 멜소위가 화성시와 조춘제 위원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한 후 故 잰 러프-오헌(Jan Ruff-O’Herne) 여사의 손녀 루비 챌린저(Ruby Challenger)씨의 영화 제작 지원금을 전달했다. 오헌 여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 동원되었다가 호주로 이주한 후 90년대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과 다른 나라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군의 2차 대전 성폭력 범죄를 호주와 세계에 알려온 인권운동가이다. 멜번 ‘소녀상’ 제막식에는 러프-오헌 여사의 딸인 캐롤 러프(Carol Ruff)씨, 손녀인 챌린저씨, 증손녀 등 3대가 자리를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조춘제 위원장이 루비 챌린저씨에게 영화 제작비 지원금을 전달했다.루비 챌린저씨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간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단편 영화 ‘Daily Bread’에 이어 장편 ‘Handkerchief (손수건)’ 제작을 준비 중이다. 제목은 러프-오헌 여사가 ‘위안소’에 끌려갔던 당시 함께 끌려간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을 수놓아 간직했던 손수건에서 따온 것으로 이 손수건은 캔버라 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 제2차 세계대전실에 전시되어 있다.

얼마전 시드니 소녀상이 있는 애쉬필드 연합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딸을 안고 멜번 제막식에 함께한 챌린저씨는 “예술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라며 “소녀상이 앞으로 몇 세대에 걸쳐 기억을 보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막식은 화성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화성시-멜소위간 양해각서 체결식에 이어 웨이블리 어린이 합창단의 ‘홀로 아리랑’ 합창, 이영아 학생의 편지낭독, 예솔 여성 합창단 공연, 백문기-이선배 듀엣 공연으로 이어졌다.  

이어 한인회관 바로 앞에서 하얀 천에 덮여 기다리던 ‘평화의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냈고 멜번에서 활동하는 문화패 ‘소리’가 창작 무용 작품 ‘슬픔을 보다’로 ‘위안부’ 할머니를 기렸다. 유예승 학생의 편지 낭독이 이어졌다.

멜번 문화패 ‘소리’는 창작무용작품‘‘슬픔을 보다’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렸다.

멜소위 측은 혹시 모를 방해를 방지하기 위해 건립일 새벽 소녀상을 한인회관 앞에 세웠으며 ‘소녀상’ 위에 설치된 LED 등으로 저녁에도 환하게 밝히고, 주변에는 CCTV를 설치해 안전을 기했다고 밝혔다. 제막식은 조춘제 위원장, 정미애 위원장, 서철모 시장의 헌화를 시작으로 참석자들의 헌화와 기념촬영으로 막을 내렸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제막식 전 기자회견을 통해 화성시가 100년전 3.1 운동 당시에도 가장 많은 만세운동이 열렸던 지역으로 일본에서 군대를 파견해 진압한 제암리 학살사건도 화성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소개했다. 서시장은 자발적인 시민의 만세운동에 화성시에서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했듯이 소녀상 건립 운동에도 화성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소녀상 건립에 화성시 예산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화성시장은 소녀상 건립을 원하는 지역이 있다면 “원하는 곳은 다 해드린다”며 그러나 “한인회에서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설치 이후 유지 관리가 중요하다… 설치만 하면 의미가 없다”는 어려움도 전했다.

조춘제 위원장은 3년 동안 모금행사를 통해 2만 1000달러를 모았고 장학금으로 2만 5000달러를약정받았다고 밝혔다. 멜소위 측은 ‘평화의 소녀상’ 회계 내역은 행사 후 정기총회에서 내역을 보고하겠다고 밝혔으며 장학기금 운용 계획도 추후 자세하게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에서 ‘위안부’ 캠페인 벌인지 13년 만에 멜번에 ‘소녀상’ 건립

윤미향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은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프고 그리운 날이기도 하다”며 미국 워싱턴 DC 소녀상 제막식 직후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길원옥 할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누구보다 기뻐하셨다”며 ‘호주에도 우리 역사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네’라는 할머니의 소망을 전했다.

‘위안부’ 생존자인 장점돌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와 이전에 호주를 몇차례 찾았던 윤미향 이사장은 멜번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2006년도 장점돌 할머니와 멜번, 호바트, 애들레이드, 시드니에서 앰니스티 호주 본부와 공동 캠페인을 벌인지 13년 만이라고 감격했다. 당시 윤미향 이사장은 시내 광장에서 촛불집회 등을 통해 호주사회에 ‘위안부’ 역사를 알렸다. 이후 길원옥 할머니는 연방 의회 결의안 채택 캠페인과 함께 ‘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 문제로 호주사회에 알려, 여론을 고취시키는 노력을 했다. 윤 이사장은 당시 연방의회가 위치한 “캔버라 하늘에 <Japan Say Sorry>라는 글이 하늘에 새겨진 것이 뜻깊었다”고 회고했다.

이사장은 이번 소녀상 건립이 “먼저 씨를 뿌렸던 할머니들의 선물”이라며 “얀 오헌 할머니와 대만 슈메이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적극적으로 연대한 지역도 호주”라고 소개했다. 윤이사장은 “얀 오헌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손을 잡고 멜번 시민에게 직접 ‘가해자가 사과하게 하고, 우리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쩌렁쩌렁하게 피해자의 목소리로 외쳤던 곳이 멜번”이라며 “그런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한인회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이사장은 빅토리아주 한인사회에 “어떻게 하면 인권을 회복시킬까, 평화를 만들어서 이 땅에 어느 곳에서도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없게 만들까 토론해 주시면 고인을 기리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평화의 소녀상’ 인권·평화 교육 상징되어야

멜번 소녀상은 ‘위안부’ 희생자를 기리는 비석과 ‘소녀상’을 포괄하는 기림비로는 세계에서 29번째이다. 윤미향 이사장은 필리핀에 설치되었던 소녀상은 비록 며칠만에 일본의 압박으로 철거되었지만 “기둥은 남아있다”며 이 기둥도 “역사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멋진 활동을 준비하며 공개, 보도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는 “가해자가 이 문제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역사를 지우려고 해도 진실… 정의 추구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제막식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또한 ‘평화의 소녀상’이 멜번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평화교육, 인권교육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멜번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는 빅토리아주 한인동포를 비롯, 평화의 소녀상 제작을 지원한 호주 화성시 관계자, 시드니 소녀상 건립 및 관리 관계자, 뉴질랜드에서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한인 동포를 포함 200여명이 함께 했으며 자리가 부족해 한인회관 강당 뒤쪽에서 수십명이 서서 제막식을 지켜봤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잰 러프-오헌(Jan Ruff-O’Herne) 할머니의 딸 캐롤 러프씨와 손녀 루비 챌린저씨, 챌린저씨에게 안긴 증손녀 3대가 멜번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러프-오헌 여사는 백인으로는 유일하게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한국과 대만을 포함 아시아 지역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전세계적인 캠페인을 주도하다 지난 8월 타계했다.

박은진 기자

사진: 빅토리아주 한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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