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전투’<br>8월 22일 호주 개봉
일제시대 항일 무장투쟁사 중 일제를 상대로 대규모 전투에서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를 다룬 ‘봉오동 전투’가 22일 호주 전역에서 개봉한다.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전투’<br>8월 22일 호주 개봉
1919년 3월 1일
일제의 학살과 탄압에 맞서온 조선에 전국적인 비폭력 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진압한다.
이는 항일 무장투쟁에 불을 붙였으며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1920년 5월
독립군에게 입는 피해가 늘어가자 일본군은 독자적인 독립군 토벌계획을 세운다.

1920년 5월 28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한다.
그리고 봉오동에 집결하여 강력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한다.

1920년 6월 4일
대한신민단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 종성군(鐘城郡) 강양동(江陽洞)에 진입해 일본군 순찰소대를 습격해 타격을 입힌다.
다음날 일본군 1개 소대 병력이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해오자, 대한북로독군부의 독립군은 삼둔자(三屯子)에서 일본군 추격대를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
일본군은 이를 핑계로 함경북도 나남(羅南)에 주둔하던 제19사단에 백전무패의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편성하고 중국 영토를 침입하여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 공격에 나선다.
홍범도, 안무, 최진동 이하 출신도 계층도 달랐던 수많은 독립군이 목숨을 걸고 봉오동 골짜기까지 일본군을 유인하고 포위하여 야스카와 지로 소좌가 이끈 일본군 추격대대를 삼면에서 포위하여 궤멸시켰다.
봉오동 전투는 만주지역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독립군의 사기가 크게 높아졌으며, 1920년대에 독립전쟁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1]
[1] 각 연대별 내용 출처: 두산대백과

임무는 단 하나! 달리고 달려,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라!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1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에 묻혔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유해진은 온 몸으로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사실적인 액션으로 독립군 황해철

항일 무장투쟁사 첫 승리

봉오동 전투, 첫 영화화

일제시대 항일 무장투쟁사 중 일제를 상대로 대규모 전투에서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를 다룬 ‘봉오동 전투’가 22일 호주 전역에서 개봉한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대규모 승리를 쟁취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를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신연 감독은 한 명의 영웅이 아닌 모두가 함께 일궈낸 첫 승리의 역사, 봉오동 전투에 단번에 매료되었다고 전했다.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시나리오를 읽어내려가는 내내 소름이 돋고,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내가 마치 그 시대 독립군이 된 기분이었다”. 당시 봉오동에는 밟고 살 땅, 농사 지을 땅, 죽어서 묻힐 땅을 찾겠다고 몰려든 전국의 이름 모를 독립군들로 가득했다.

그동안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의 이야기는 많았지만 이름 없는 영웅들을 들여다본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봉오동 전투>는 어제 농사 짓던 인물이 오늘 독립군이 되어 이름 모를 영웅으로 살아간 시간과 그들의 승리에 관한 영화이다. 기억되지 못 했고, 한 줄의 기록조차 남겨지지 않았던 이들이 뜨겁게 저항해 쟁취한 승리가 바로 봉오동 전투다.

원신연 감독은 “지금까지 영화들이 대부분 피해의 역사, 지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에 대해 다뤘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는 절망으로 점철된 시기가 아니라 희망과 용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다. 외면하고 싶은 아픈 역사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저항의 역사다”라며 일제 강점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기록하고 싶은 열망을 전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하나의 뜻 아래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던 독립군들의 이야기, 그들의 첫 승전보가 8월 호주 동포를 찾아오는 것이다.

백발백중의 사격 실력을 자랑하는 이장하를 연기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사격을 배우고 생애 첫 와이어 액션에 도전한 류준열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하라!

숨가쁘고 박진감 넘치는 전력질주 액션의 완성

능선과 골짜기를 넘나드는 필사의 유인책! 달리고 또 달려라!

1920년 6월, 봉오동에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승리가 탄생했다. 만주 일대의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모인 일본군은 수백명, 하지만 독립군의 병력은 이들과 맞서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백전무패로 악명 높은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남양수비대와 각종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 정예 병력을 상대로 독립군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봉오동의 지형을 활용해 필살의 작전을 세운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목숨을 담보로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까지 달리고 또 달려 일본군을 유인, 고립시키고 승리를 쟁취하기까지 과정을 숨가쁘고 박진감 넘치게 담아낸다. 능선과 계곡을 무기삼아 매복과 공격을 반복하는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일본군에 맞서는 치열한 액션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완벽한 봉오동 지형을 찾아! 로케이션 15개월!

원신연 감독은 시나리오를 각색할 때부터 마적 출신의 독립군 마병구로 조우진을 생각했다.

의지와 투혼이 만들어낸 배우들의 액션 열연!

독립군의 선제공격과 험한 지형, 기후 조건을 이용한 전투였다는 기록에 기반한 제작진은 독립군의 필사적인 달리기와 유인책, 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험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데 방점을 두었다. 실제 봉오동의 지형과 유사한 곳을 찾기 위해 로케이션에만 15개월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고, 각 상황을 그림으로 세세하게 그린 후 카메라 앵글과 각도까지 맞춰 촬영을 했다.

달리고 달려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까지 일본군을 유인했던 이름 없는 독립군들, 그리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의 저항과 전투를 고스란히 그려낸 원신연 감독과 배우들의 진심과 열정이 99년의 시간을 거슬러 스크린에서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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