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찍어내기 18일 리플레이
세번의 배신과 한번의 왕따로 ‘숙청’  정치는 참 잔인한 것이었다. 지난 5월 29일 이후 소위 ‘국회법 개정안 정국’이라 불렸던 한 달여 사이,... 유승민 찍어내기 18일 리플레이

세번의 배신과 한번의 왕따로 ‘숙청’

[일요신문] 정치는 참 잔인한 것이었다. 지난 5월 29일 이후 소위 ‘국회법 개정안 정국’이라 불렸던 한 달여 사이, 정가는 무림의 활극을 보듯 여권의 내홍을 지켜봤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거부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기 하는 상황이 벌어진 18일 동안은 청와대와 국회에 ‘정치’는 없었다. 그리고 언론이 마치 짠 듯 함구하고 있지만, 이 여권의 내란 속에는 배신과 함정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짚어보자.

국회법 개정안 정국 한 달여 사이 여권은 내홍을 거듭했다. 왼쪽부터 박근혜 대통령 국회법 거부권 행사, 유승민 원내대표 공개 사과, 유 원내대표 사퇴 발표. 일요신문 DB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국민이 심판해달라”며 여당의 원내사령탑(유승민)을 꼭 집어 힐난한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좀 어물쩍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이길 순 없다.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도 존중받아야 한다.”

김무성 대표는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 두 사람의 손을 모두 잡으려 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이렇게 ‘그래도 함께 가자’는 스탠스를 취하면 대통령도 노기를 다스리고 원내대표도 각성할 것이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상황은 김 대표의 노력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유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발언 직후 “노여움을 푸시라. 필요하다면 몇 번이라도 더 사과하겠다”고 ‘90도’로 고개를 숙였지만 청와대에선 별 반응이 없었다. 그 뒤, 김 대표는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무대(김무성 대표)는 현 정치권의 누구보다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김 대표가 왜 유승민의 손을 놓고 대통령의 손만 잡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8대 국회, 여권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를 과학 중심의 경제도시로 바꾸는지 여부를 놓고 현재권력(이명박)과 미래권력(박근혜)이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때 김 대표의 ‘탈박 사건’이 벌어진다. 김 대표가 당시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박근혜 전 대표(당시 국회의원 신분)의 뜻과 달리 세종시 수정을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본인 스스로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친박계 입장보다는 현재권력이던 친이계 입장에 섰던 것이다. 이번 사태와 꼭 닮았다.

친박계 사정에 밝은 정가 인사는 “어쩌면 가장 결정적인 순간, 그러니까 대통령과 맞서는 상대가 어떤 정치생명을 걸고 맞서고 있는 그 순간, 김무성은 불확실한 미래권력보다는 확실한 절대권력 쪽에 붙었다”라며 “청와대에서의 경험, YS라는 큰 정치인을 보좌한 여러 경험이 녹아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종국엔 유승민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것으로 끝나리란 것은 그 중간에 김 대표가 있었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배신의 데자뷔’가 존재했다는 것.

김 대표는 태도를 바꿔 유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 비서실을 대상으로 주재할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전격 연기시킨다. 유 전 원내대표의 활동반경을 좁히거나 무력화하며 압박한 것과 같았다. 또 김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만 뺀 나머지 지도부와의 한밤 ‘63빌딩 회동’으로 ‘원내대표 사퇴권고 결의안’이라는 사상 초유의 ‘레드카드’를 만들고 만다.

앞서의 인사가 밝혔듯, 대통령과 맞서는 상대가 가장 코너에 몰렸을 때 그는 현재권력, 절대권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는 사석에서 김 대표를 “형님”이라 부르고, 김 대표도 “우리 승민이”라고 한다. ‘사퇴 권고 결의안’을 들고 김 대표가 유 전 원내대표의 의원실을 찾아서 “승민아, 우리가 와이래 됐노. 내가 한번 안아줄게”라는 장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배신의 두 번째 장면은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쓴다. 4선의 원 의장은 유 전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한 팀이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원내대표 사퇴권고 결의안’은 “내가 만든 중재안”이라 실토했다. 당 지도부의 권고나 투표로 아웃되는 파국을 막고자 의원들이 총의를 모아 유 전 원내대표에게 좀 물러나달라고 권고하자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유 전 원내대표에겐 아주 뼈아픈 대목이다. 유 전 원내대표의 측근에선 “어떻게 원유철이 이럴 수 있냐”는 말이 나왔다. 유 전 원내대표측은 “원래는 손을 같이 잡고 결사항전을 외치는 것이 한 팀으로서 도리이고 상식이다. 유승민은 물러날 이유를 모르겠다고까지 했는데…원 의장이 나서서 ‘쫓아낼 수 있는 법’을 만든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말한다.

이 역시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지만 원 의장의 이런 스탠스는 예고됐다. 가뜩이나 4선인 본인이 3선의 유 전 원내대표에게 가려져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때였다. 7일 오전 8시 40분쯤인 비공개 긴급 최고위가 열리기 직전, 김 대표가 유 전 원내대표의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직후 시간차를 두고 원 의장이 이곳을 찾는 장면이 목격됐다. 전날 ‘63빌딩 회동’ 직후 김 대표와 원 의장이 사실은 우연인 것처럼 3자대면해 유 전 원내대표를 찾아 사퇴를 권고했다는 것이다. 아니면 ‘퇴장 카드’를 들 수밖에 없다며.

유 전 원내대표가 의총 결과를 토대로 사퇴의 변을 밝힌 하루 뒤 원 의장의 ‘원내대표 승격’ 합의추대 이야기가 정가를 크게 회자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원내지도부의 기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팀킬’시키고 새로 구성해야 하는데 원 의장은 살려둘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결국 박 대통령은 유승민만 싫었다는 것이냐는 얘기가 정가를 휘감고 있다.

이 국회법 개정안 정국에는 서청원 최고위원의 배신도 녹아 있다. 지난해 7·4전당대회 당시 유 전 원내대표는 사실상 김 대표보다는 서 최고위원을 밀었다. 대구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 전 원내대표는 현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며 서 최고위원을 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언론에 뒤늦게 알려졌다.

김 대표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함께 한 유 전 원내대표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법하다. 하지만 서 최고위원은 이번 정국에서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사실상 촉구했다.

그리고 언론이 놓치는 장면 하나가 있다. 바로 5월 29일 새벽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이 국회법 개정안과 연계돼 처리되기 직전의 일이다. 알려진 바로는 청와대가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이 처리되지 않아도 좋으니 국회법 개정안은 처리하지 말아달라는 뜻을 당에 전달했는데, 유 전 원내대표가 이를 무시하고 의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통과시켰다고 돼 있다. 친박계가 ‘유승민 아웃’을 크게 외친 것도 왜 청와대의 뜻을 소속 의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청와대의 고의적인 ‘유승민 왕따작전’이 숨어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유 전 원내대표와 직접 통화하는 게 싫었던지(또는 기피했던지) 정무특보이기도 한 김재원 의원에게 ‘청와대의 뜻’을 전했는데 김 의원도 “유 전 원내대표와 직접 이야기하라”는 취지로 입장을 전했다. 유 전 원내대표와 통화하기 싫기 때문에 청와대가 직접 하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또 다시 ‘관계도 없는’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에게 ‘뜻’을 전달했고, 조 부대표도 김 의원과 같이 ‘유 전 원내대표에게 직접 말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 전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어떤 의견도 듣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도 청와대 뜻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 ‘배신자’가 돼 버린 셈이었다. 여기에서 김재원 정무특보와 그밖에 얘기를 전달받은 사람들의 ‘직무유기’도 거론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유승민 사퇴의 총의를 모으는 의원총회장에서 나왔고 일부 의원들이 언론에 뒤늦게 흘린 말이다.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지 않은 유 전 원내대표의 잘못도 있지만 그 과정에선 이런 당청불통의 단면이 연출됐던 것이다. 또한 청와대가 당시 유 전 원내대표를 얼마나 경원시했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정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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