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유승준, 대법에서 비자 발급 거부 판결 뒤집힌 이유는?
“법적 입국금지 사유는 소멸 가능성…법무부장관·총영사관이 재량으로 입국 여부 판단해야” 약 20년 전 병역 의무 이행과 관련해 한 편의 ‘대국민 사기극’을 찍으면서... ‘기사회생’ 유승준, 대법에서 비자 발급 거부 판결 뒤집힌 이유는?

“법적 입국금지 사유는 소멸 가능성…법무부장관·총영사관이 재량으로 입국 여부 판단해야”

약 20년 전 병역 의무 이행과 관련해 한 편의 ‘대국민 사기극’을 찍으면서 결국 ‘국내 입국 금지’라는 초유의 처분이 내려졌던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븐 유·43)의 숨통이 트였다. 유승준이 청구한 사증(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에 돌려 보냈다. 파기환송심에서 유승준이 승소할 경우 정부는 그가 청구한 재외동포 비자 발급 여부를 다시 심사해야 한다. 

11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유승준이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 총영사를 상대로 낸 사증 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처분이 적법한지는 상급행정기관의 지시를 따른 것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 대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령의 규정과 입법목적, 비례·평등원칙과 같은 법의 일반원칙에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이 사건 사증 발급 거부 처분이 재외공관장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시에 해당하는 입국금지결정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해서 그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거부 처분은 재량행위인데, 주LA 총영사가 오로지 13년 7개월 전에 이 사건 입국금지결정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사증 발급 거부 처분은 재량권 불행사로 위법하다”고 짚었다. 처분의 토대가 됐던 유승준의 입국금지결정은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지 않는 행정 내부의 지시에 불과함에도 이를 유일한 이유로 삼아 총영사 측이 법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그대로 처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재량권 불행사’와 관련, 주 LA 총영사가 출입국관리법과 재외동포법 등에 위배되거나 관련 조항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먼저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입국금지와 관련해 유승준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과 “경제질서 또는 사회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이 같은 입국금지 결정은 2002년 병무청의 요청을 받아들여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이 결정한 조치로, 지난 2003년 장인상을 치르기 위해 사흘 간 입국한 것을 제외하면 2019년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유승준의 입국금지 사유가 소멸했을 가능성을 짚었다. 이 경우 입국금지를 요청한 기관인 병무청이나 결정권자인 법무부장관이 해제를 요청하거나 직권으로 해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총영사 측 역시 이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외동포법에 비춰 보더라도 ‘대한민국 남자가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해 외국인이 된 경우’에도 38세가 된 때에는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외동포 체류 자격의 부여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유승준 역시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나 현재 43세인 그에게 법무부장관의 직권으로 재외동포체류자격이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재외동포법이 재외동포의 국내 출입국과 체류에 대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에 비춰 재외동포에 대해 기한의 정함이 없는 입국금지조치는 법령에 근거가 없는 한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총영사 측의 절차 미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2015년 9월 2일 총영사가 유승준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사증 발급 거부 처분 결과를 통보했고, 유승준에게는 처분 이유를 기재한 거부처분서를 작성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서에 의한 처분 방식의 예외가 인정되는 ‘신속히 처리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는 행정절차법 위반으로 위법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유승준은 2002년 대한민국의 국적을 상실할 때까지 수년 간 대한민국에서 활발하게 연예 활동을 하면서 많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공개적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입국금지결정이나 사증 발급 거부 처분이 적법한지는 실정법과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파기환송심을 통해 유승준의 사증 발급 거부 처분의 위법성이 인정되고 취소 판결이 확정되면 LA 총영사 측은 유승준의 사증 발급 신청에 대해 다시 처분을 해야 한다. 이미 유승준에 대한 입국금지결정 사유가 소멸됐다면, 재외동포로서의 체류 자격은 그대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90년대 높은 인기를 누렸던 유승준은 “당당히 입대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 오다가 입영을 앞둔 2001년 일본 고별콘서트와 미국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다는 이유로 출국한 뒤, 이듬해인 2002년 1월 18일 LA 법원에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당시 유승준은 지금은 폐지된 귀국보증제도를 이용해 “일정을 마치면 바로 귀국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출국했으나 결국 대한민국의 국적을 포기했다.  

이에 병무청에서는 같은 시기 법무부장관에 “유승준이 재외동포의 자격으로 입국해 방송활동, 음반출판, 공연 등 연예활동을 할 경우 국군 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들이 병역의무를 경시하게 되며, 외국국적 취득을 병역 면탈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할 것”이라며 유승준이 재외동포 자격으로 재입국하고자 할 경우 국내 취업 및 가수활동 등 영리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안이 불가능할 경우에 한해 입국 자체를 금지해 달라고도 요청했으며, 이에 따라 법무부장관이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결정했다. 

유승준은 2003년 장인상을 치르기 위해 사흘 간 일시 귀국한 것을 제외하면 입국금지결정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8월 주 LA총영사에 외국인이 아닌 재외동포 체류자격으로 사증 발급을 신청했고, 총영사 측에서 유승준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입국규제대상자에 해당해 사증발급이 불허됐다”고 밝히면서 이 사건 소송이 시작됐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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