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여성이 만만해?
4월부터 6월까지 코로나19 관련 인종차별 접수 사이트에 377명이 피해사례를 알렸다. 아시아계 여성이 만만해?

코로나19 인종차별 여성 피해자가 65%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호주내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은 주로 여성에게 집중됐으며 장소는 길거리가 가장 많았다.

24일 발표된 코로나19 인종차별 사건보고 조사(COVID-19 Racism Incident Report Survey) 1차 보고서에 따르면 인종차별 피해 조사 응답자의 65% 이상이 여성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15%는 유학생이라고 답했고 이 중 80%는 중국 학생이었다. 현재 호주에 체류하는 중국인 유학생은 16만 5000명이 넘으며 전체 유학생의 1/4을 차지한다.

주별로는 NSW주가 37%, 빅토리아주 32%, 퀸즈랜드가 13% 순이었다. 또한 피해사례의 절대다수는 주도에서 일어나 시드니는 30%를 차지했다. 이는 아시아계 이민자와 유학생이 호주 동부 대도시에 많이 거주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016년 센서스에 따르면 시드니 거주자의 28%, 멜번 24.4%가 아시아계이다.

보고서는 설문조사에 참여한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인 이유가 가해자들이 아시아 여성을 약하고 만만한 표적으로 전형화하는 것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또한 코로나19 관련 인종차별 사건의 40%는 길거리나 골목에서 발생했으며 슈퍼마켓에서 피해를 당한 경우도 22%나 됐다. 9.4%는 온라인에서 발생했으며 온라인 사례 중에는 페이스북이 43.7%로 가장 많았다. 가해자의 84% 이상이 피해자와는 면식이 없는 사람으로 인종차별 공격이 국적이나 다른 요소와 상관없이 외모가 아시아계인 경우 무차별적으로 가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SNS로 종종 공개되는 대중교통이나 거리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 사례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응답자가 가장 많이 언급한 피해는 인종차별적 비방과 욕으로 35%를 차지했다. 피해 사례 중 60%는 인종차별적 비방/욕, 물리적 위협, 언어위협, 침뱉기 같은 물리적 또는 언어적 괴롭힘과 관련된 것이었다. 퍼스에 거주하는 23세 말레이시아계 중국인 여성은 길을 걷다 일단의 백인 남성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욕을 들었고 “가서 박쥐를 먹고 혼자 죽어. 호주에 오지마”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피해 사례 중 물리적 위협은 6.1%를 차지했다. 시드니에 거주하는 19세 베트남계 호주인 여성은 “아시아인이니까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으니 떨어져 있어,” “니네가 바이러스를 가져왔어”라는 말과 함께 차일 뻔했으며 “칼로 위협”을 당하고 “얼굴에 침을 뱉어 왼쪽 눈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언어 위협은 전체의 9.2%를 차지했다. 멜번에 거주하는 50세 중국 남성은 버스에서 백인 남성이 가만히 있는 버스 운전기사에게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라, 여기 바이러스를 가져왔다”고 시비를 거는 장면을 목격했다.

침을 뱉거나 일부러 기침을 하는 사례도 8%를 차지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인종을 비방하는 욕이 동반된다. 시드니에 거주하는 29세 베트남계 여성은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소형 밴을 운전하던 남성이 속도를 멈추더니 다짜고짜 욕을 하고 침을 뱉는 사건을 겪었다.

피해사례 중 13.4%는 지인에게 농담식 모욕을 겪은 경우이다. ACT에 거주하는 46세 중국-인도계 호주인 남성은 직장 동료에게 ‘CCP’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모른다고 답하자 동료는 “중국인이니 알아야 한다”며 중국공산당(Chinese Community Party)’의 약자라고 답했다. 이 남성은 중국-인도계로 호주인이지만 외모가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이다.

#IamNotaVirus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쓸면서 첫 발생지가 중국이라는 이유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사례도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미국 코네티컷에 거주하는 작가 마이크 커(Mike Keo)씨는 가족이 인종차별 공격을 당한 후 #IAmNotAVirus를 태그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시아인이니까 자가격리해야지” 농담식 직장내 차별도

직장내 차별도 2.4%를 차지했다. 시드니 거주 47세 일본인 여성은 직장에서 당한 황당한 사례를 전했다. 이 여성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직장 엘리베이터 옆 탁자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 때 백인 여성 부하 직원 2명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이 여성을 보고 왜 책상이나 다른 곳에서 먹지 않고 여기서 점심을 먹느냐고 물었다. 질문 후 한 여성이 “아 아시아인은 격리를 해야 하니까 당신도 자가격리 중이구나”라고 “농담식” 말을 반복했다.

ANU 호주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계 호주인의 65%가 직장에서 차별당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내 차별의 중심에는 아시아인이 온순하거나 고분고분하게 말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아시아계 호주인은 법무법인 파트너의 3.1%, 법정변호사의 1.6%, 사법부의 0.8%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친탄 인종차별방지 위원장은 호주 사회 지도층에서 아시아계 호주인의 비율이 지나치게 적은 것은 “개인 뿐 아니라 사법과 같은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주택이나 상점, 차 유리에 인종차별적 낙서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시드니 이스트우드에 사는 가족은 집 벽에 코로나19로 아시아인을 비난하는 낙서가 칠해졌다고 답했다.

손님에게 서비스를 거부당하는 경우와 같이 다른 사람이 피하는 경우도 7.2%를 차지했다. 멜번에 거주하는 36세 중국계 동티모르인 여성은 고객이 자신을 포함해 동남아계 직원을 거부한 경험을 전했다.

소수이지만 인종 때문에 식당이나 상점 입장이나 심지어 대중교통 이용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었다. 브리즈번에 거주하는 40세 중국인 남성은 경비원이 아시아계 남성 2명의 매장 입장을 거부한 장면을 목격했다. 시드니 거주 26세 중국-말레이시아계 호주인 여성은 친구와 함께 시드니 도심 인근에서 우버를 불렀지만 운전사는 자신과 친구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코로나19에 걸리기 싫다며 탑승을 거부했다.

퍼스에서 아이를 데리고 일반의를 찾은 34세 중국계 여성은 들어가자마자 대기실에 있던 사람이갑자기 앞을 막고 “코로나19확산 때문에 아시아인은 실내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해 큰 충격을 받았다.

또한 공공장소에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같이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속하지 않는 기타 피해가 전체의 약 15%를 차지했다.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부정적 언론 보도가 인종차별 부채질

보고서는 호주내 아시아인에 대한 가짜뉴스와 같이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인종차별 공격을 더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호주 언론과 예술계의 다양성 결여도 간접적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호주 언론이 “선정적 헤드라인과 인종적으로 과장된 이미지, 대유행과 중국의 영향 증가 문제에 대한 일방적 보도로 반중 감정을 퍼뜨리는 데 공모해 왔다”고 꼬집었다.

이에 더해 아시아인은 인구의 12%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TV, 영화, 라디오, 인쇄 매체 등에서 상대적으로 보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아시아계 호주인은 다른 유색인종과 함께 호주에 속하지 않는 ‘타자(他者)’로 인식되어 위기시에 손쉬운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보고서 저자는 이번 조사 결과가 코로나19 관련 인종차별적 공격이 동떨어진 개별 사건이 아니라 호주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시아 출신 주민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의 일환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이번 조사가 중국계와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인종차별 공격이 증가한다는 근거가 없다거나 중국계 주민에 대한 폭력 발생 경향이 없다는 사이먼 버밍햄 관광장관과 마이클 맥코맥 부총리의 주장에 반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인종차별 피해 당해도 90%는 신고 안해

이번 조사를 통해 인종차별을 알린 응답자의 90% 정도는 피해를 당했다고 인식했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호주에서 인종차별 피해를 입는 아시아인이나 아시아계 호주인의 경찰 신고 비율은 아주 낮다. 보고서는 아시아계 주민 스스로가 “손님”으로 간주하고 백인계 호주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호주인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낮은 신고율의 한가지 이유라고 봤다. 한국인들도 종종 백인 호주인을 ‘호주인’으로 지칭하고 한국인을 포함 다른 유색인종 이민자는 ‘호주인’이 아니라고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고율이 낮은 것은 언어 장벽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경찰 신고 자체가 어렵거나, 신고방법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신고를 해도 이에 따른 처벌이 이루어질지 확신이 없거나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이나 계속 인종차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 지도자의 발언이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이민자들은 고국에서 경험 때문에 경찰이나 공권력을 불신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호주에 살면서 일상적 인종차별(casual racism)이나 미묘한 인종차별(racial microaggression)은 불가피하며 폭행을 당하지 않는 한 인종차별이 심각한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호주에도 증오범죄를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이 있지만 실제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ABC 탐사보도에 따르면 주경찰이 기록한 차별관련 범죄는 수천건에 달하지만 호주 전체에서 증오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21명에 불과하다. ABC에서 입수한 빅토리아주 경찰 내부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범죄 3건 정도가 편견동기(prejudice-motivated) 범죄로 기록되어 있다.

보고서는 제한된 자료와 처벌 결여로 인종증오범죄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며 결과적으로 우선 처리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 문제가 보도되자 정부 여러 차원에서 신고제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마련됐다. 연방정부는 ‘Help Stop Racism’ 웹사이트를 개설했으며 NSW주정부는 ‘Stop Public Threats’ 캠페인을 시작했다.

보고서 저자들은 캠페인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이로 인해 “광범위한 지역사회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인종차별에 맞서는 적극적인 대처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연방정부 전국 인종차별 방지전략 주도해야

보고서 저자들은 연방정부에서 인종차별이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인종차별을 방지하고 발생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지역사회의 이해를 제고하고 신고방법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전국 인종차별 방지전략을 주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경찰 및 인종차별 방지 관련 정부기관과 호주연방 인권위원회가 인종차별이 동기가 된 사건에 대한 자료수집을 개선하고 전국적으로 일관된 인종차별 사건 데이터 관리가 가능하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인종차별을 겪은 피해자들을 위해 신고절차를 단일화한 ‘원스톱숍’을 설치를 제안했다.

이와 함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주민의 신고를 편리하게 하기 위한 다국어 신고방법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국어 서비스는 단순한 영어 번역이 아니라 다양한 비영어권 지역사회 필요에 맞게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종적 편견으로 인한 범죄행위에 대한 입법장벽을 철폐하고 비방방지법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호주인권위원회가 호주신문평의회(AustralianPress Council)와 같은 기관과 협력하여 아시아 및 아시아계 호주인사회를 다루는 보도에서 무의식적인 편견을 제거하기 위한 자문 지침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뉴스룸과 언론 전문가들이 이러한 편견이 의도치 않게 아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관련해서는 ‘트렌딩 콘텐츠’ 중 코로나19 관련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가짜뉴스’ 컨텐츠를 보다 쉽게 신고하고 삭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인종차별 피해 조사는 4월 2일부터 7월까지 호주 거주 아시아계 주민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실시됐으며 참여자는 총 410명에 달한다. 16일 유학생 여부를 묻는 질문이 추가됐고 21일부터는 간체 중국어와 한국어로 질문이 번역됐다. 중국어와 한국어로 응답한 사람은 3.4%에 불과하다. 1차 보고서는 4월 2일부터 6월 2일까지 두달간 접수된 377건을 분석한 것이다. 코로나19 인종차별조사 프로젝트는 Asian Australian Alliance, Being Asian Australia와 오즈몬드 추 Per Capital Thinktank 연구원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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