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만에 호주오픈 트로피 호주 품으로
애쉬 바티가 44년만에 호주오픈 우승컵을 호주로 되찾아 왔다. 44년만에 호주오픈 트로피 호주 품으로

애쉬 바티, 여자 테니스계 우뚝

1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 저녁 호주오픈 주경기장 로드레이버 아레나를 가득 메운 군중 앞에서 호주 테니스계에 새 전설이 탄생했다. 애쉬 바티가 44년만에 호주오픈 우승컵을 호주로 되찾아온 것. 바티는 호주 테니스계의 영웅이 됐을 뿐 아니라 세계 여자 테니스계의 새 맹주 자리를 굳혔다.

호주오픈 2주 간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절대강자로 결승에 오른 바티는 다니엘 콜린스(미국, 25위)에게도 세트를 내주지 않고 6-3, 7-6(2)로 승리를 거뒀다. 바티는 결승전 초반 극도로 공격적이고, 엄청난 경쟁력을 보인 콜린스에 밀리는 듯 했다. 2세트에서 1-5로 뒤지던 바티는 자신의 강점인 서브, 악랄할 정도로 무거운 포핸드, 정확한 백핸드 슬라이스로 구성된 완벽한 스킬 세트 덕분에 경기 흐름을 다시 가져왔다.

이어 4세트를 잇따라 따낸 후 서브게임을 지켜내 경기는 타이브레이크 게임으로 이어졌다. 이미 승기를 잡은 바티는 강력한 포핸드 위너로 마지막 7점을 내고 포효했고, 관중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로 새 영웅의 등장을 환영했다.

호주테니스계 전설 이본 굴라공-콜리 여사 시상자로 깜짝 등장

바티가 44년만에 호주오픈 우승컵을 되찾아 오는 시상식장에는 깜짝 손님이 등장했다. 극소수 관계자들만 알고 있던 시상자는 다름 아닌 호주 테니스계의 전설 이본 굴라공-콜리(Evonne Goolagong-Cawley) 여사이다.

여자 단식 시상자로 깜짝 등장한 여자 테니스의 전설 이본 굴라공-콜리 여사는 호주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쓴 바티의 우승에 감격해했다.

굴라공-콜리 여사는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프로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며 단식 7차례를 포함 그랜드슬램 통산 14번 우승을 기록해 그랜드슬램 역사상 여자단식 통산 우승횟수가 12번째로 많다. 한국에 잘 알려져 있는 크리스에버트, 빌리 진 킹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자신의 첫 그랜드슬램 결승전 호주오픈에서 굴라공 여사에게 패했다.

굴라공-콜리 여사가 시상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바티는 사회자의 발표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굴라공-콜리 여사를 “안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특별했다. 12개월 만에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실제로 보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바티는 호주 원주민 은가리고(Ngarigo) 부족 출신으로 굴라공-콜리에 이은 두번째 호주원주민 호주오픈 챔피언이 됐다. 바티는 굴라공-콜리를 우상이자 친구로 여기며, 테니스로 복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왔다.

바티는 “그렇게 큰 행사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코트에, 그리고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나 의미가 큰 대회에서 함께 (우승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해했다. 바티는 또한 이본 굴라공-콜리에 이어 두번째 WTA 단식 랭킹 1위 호주 선수이기도 하다.

또한 바티가 결승 승리 후 콜린스와 악수한 뒤 바로 코트사이드에 앉아 있던 친구이자 동료인 케이시 델라쿠아에게 달려가 포옹한 것도 화제가 됐다. 델라쿠아는 바티의 전 복식 파트너이자 멘토로 바티가 프로 테니스계로 복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티와 델라쿠아 복식팀은 2013년 호주 오픈 여자복식 결승에 진출해 1977년 이본 굴라공과 헬렌 골레이 이후 호주오픈 결승에 진출한 첫 호주 여자복식팀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바티는 자신이 테니스를 떠나 크리켓 선수로 활약할 때 델라쿠아와 경기 후 함께 맥주잔을 기울였으며, 자신을 다시 테니스 코트에 서게 한 것도 델라쿠아라고 밝혔다. 바티는 델라쿠아와 기쁨을 나눈 뒤 채널나인과 인터뷰에서 델라쿠아가 테니스 인생의 구세주라고 말했다. 바티가 우승 후 델라쿠아에게 바로 달려가 포옹하는 감동적인 장면은 전세계 해설가들과 팬들의 마음을 녹였다.

호주 오픈 우승으로 바티는 여자프로테니스 (WTA) 랭킹 2위 아리나 사발렌카보다 무려 2600점 이상 앞서며 격차를 벌릴 것으로 보인다. 바티는 호주 오픈 전 14차례 결승에서 12번을 우승했고 직전 4게임은 연속 승리했다. 바티는 2019년 프랑스오픈과 지난해 윔블던 우승에 이어 호주오픈 우승으로 테니스 최고의 우승컵 4개 중 US오픈 우승만 남겨두고 있다.

바티가 지난 토요일 이룬 수많은 기록 중 가장 주목할 점은 클레이, 잔디, 하드코트 등 모든 테니스 코트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을 한 극소수의 선수 중 한 명이 됐다는 것이다. 현재 활동 중인 선수 중 세가지 코트에서 모두 우승한 선수는 서리나 윌리암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등 단 4명 뿐이며 바티가 5번째 선수가 됐다.

바티는 “솔직히, 내가 정말 … 그런 챔피언들과 같이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겸손해했다. 바티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 코치가 자신에게 준 최대 과제 중 하나가 “완벽한 선수가 되어 정말 모든 코트에서 한결같이 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모든 코트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을 하게 된 것이 정말 굉장하다. 내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호주오픈 우승 확정 후 포효하는 바티. 사진: 호주테니스협회
바티는 1-5로 뒤지는 상황에서 경기 흐름을 뒤집으며 여자 테니스 경기의 교과서가 됐다. 사진: 호주테니스협회

바티는 지난해 7월 윔블던 우승을 차지한 이후 더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것 같다는 것이 테니스 해설가들의 평가이다. 올잉글랜드 클럽에서 역사적 승리 이후 바티는 18승 2패라는 눈부신 성적을 냈으며 호주오픈이 열린 멜번파크에서 2주간 바티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홈코트 팬들 앞에서 외부적인 압력을 프로답게 관리하는 모습이었다.

호주 선수가 호주오픈 여자단식에서 우승한 것은 1978년 크리스오닐 이후 처음이다.

애쉬 바티는 1978년 이후 호주오픈 우승컵을 안은 첫 호주선수가 됐다. 사진: 호주테니스협회
호주오픈 여자단식 우승 후 기자회견장에 나선 애쉬 바티. 사진: 호주테니스협회

더테니스팟캐스트 데이빗 로 테니스 전문 아나운서는 바티가 자신이 갖고 있는 완벽한 스킬세트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계속 배우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3년 정도는 바티의 세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호주오픈 터줏대감 짐 쿠리어 해설위원은 바티의 백핸드 슬라이스가 페더러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테니스계에서는 지난해 호주 오픈 우승자인 나오미 오사카와 바티의 경쟁구도가 되면 여자 단식 대회가 더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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