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법률정보] S2 #1호주 헌법의 그림자
시리즈 2 호주 헌법 #1 호주 헌법의 그림자 앞으로 10여회에 걸쳐 호주 헌법과 우리의 생활에 관해 연재하겠습니다. 호주 헌법과 우리의 삶... [우리동네 법률정보] S2 #1호주 헌법의 그림자

시리즈 2 호주 헌#1 호주 헌법의 그림자

앞으로 10여회에 걸쳐 호주 헌법과 우리의 생활에 관해 연재하겠습니다. 호주 헌법과 우리의 삶 사이에 놓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다루기에 앞서 세가지를 먼저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째, 저는 호주 원주민의 원천적 주권과 영토권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합니다. 제가 이를 앞에 내세우는 것은 단순히 요식행위가 아닙니다. 한국 사람이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를 소유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국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 내 땅에 들어와 주권과 영토권을 주장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동일한 원칙으로 호주의 원천적 주권과 영토권이 호주 원주민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를 인정함으로써 한국인의 권리도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제가 다루고 싶은 호주 헌법의 세계는 우리 일상과 연결되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법을 근거로 삶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법에 대한 관심도 제한적입니다. ‘헌법’ 이라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법률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을 기울일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다양한 종류의 법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헌법이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에 작용하는 이 모든 법들이 헌법을 근거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인식을 기본으로 하여 우리 일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헌법 이슈들을 풀어 내어 독자 여러분들에게 재미와 상식을 보태 드리려 합니다. 이것이 이 칼럼의 제목인 “우리 동네 법률 정보”와도 부합될 것입니다.

셋째, ‘헌법’이라는 것은 모든 법 위에 적용되는 상위법입니다. 제가 이 주제를 흥미 위주로 연결하여 다룬다 하더라도 그 내용의 신뢰성은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 전해드릴 호주 헌법 이야기들 중 학술적인 부분들의 근거는 하트 퍼블리슁 (Hart Publishing)에서 2011년에 출판한 쉐릴 손더스 교수 (Professor Cheryl Saunders)의 “호주 헌법 (The Constitution of Australia)”을 기초로 하겠습니다. 손더스 교수는 멜번대학교 로스쿨에서 퇴임하신 명예교수로서 호주 헌법 분야의 대표적인 권위자 중 한 분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영국법과 식민지

호주법이 흔히 ‘관습법’이라고도 불리는 영국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잘 아시듯이 영국 제국은 한 때 지금의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비롯해서 전 세계의 3분의 1 가량을 식민지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법과 호주법 등이 공통적으로 영국법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외에 우리가 미처 생각치 못한 점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같은 영국법이 이식되었다 하더라도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에 영국법을 이식하였던 법적 근거와 호주에 영국법을 이식하였던 법적 근거가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무력을 통한 ‘정복’, 혹은 무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의 주권을 ‘할양’ 받는 방식으로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이 경우에 필수적인 법적 절차가 주권을 양도하는 ‘조약’의 체결입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제국주의가 우리에게 무력을 앞세워 체결했던 “을사늑약”과 “한일병탄늑약”이 이에 해당합니다.

잠시 덧붙이자면, ‘한일병탄’이 한국의 동의로 이루어졌다는 일본의 주장이 법적인 면에서 억지인 이유는 현재의 국제법적 관점에서 봤을 때 무력과 협박을 앞세워 체결된 이들 조약들이 무효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철학적 관점에서는 영미권 정치철학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존 로크(John Locke)의 이론을 근거로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로크는 한 민족이 다른 국가에 정복을 당해 주권을 상실한 경우라 할 지라도 그 다음 세대의 의지에 따라 그 조약의 효력이 무효화 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미권의 정치철학사에서 로크의 사상이 차지하는 무게를 감안하면 이 이론은 법의 효력을 뛰어넘는 상위 규범으로 작용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적용하면 3.1 운동과 광복군 활동으로 대표되는 꾸준한 광복 노력이 ‘한일병탄’을 실질적으로 무효화시킨 것으로 해석이 될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영국은 전 세계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식민지에 적용된 법들은 영국법 뿐 아니라 당시 그 나라에 이미 존재했던 법의 체제와 내용을 일부 받아들여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방식은 현재 영미법 (Common Law)이 발생한 기원과 정확히 그 궤를 같이 합니다.

현재 영미법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 윌리암이 서기 1066년에 현재의 잉글랜드 지역을 ‘정복’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를 통해서 윌리엄은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노르망디를 본토로, 잉글랜드를 식민지로 하는 새로운 왕국을 통치하게 됩니다. 새나라를 다스리려면 새로운 법이 있어야 할 텐데요, 이 때 윌리엄은 흥미롭게도 기존에 존재하던 잉글랜드의 법들을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고 선언해 버립니다.

주목할 것은 잉글랜드에 존재하던 기존의 법이라는 것이 대부분 각 지역의 관습법들인데, 이들 관습법의 내용이 지방마다 매우 달랐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오늘날의 영국과 달리 당시의 영국은 몇 세기에 걸쳐 켈트, 로마, 앵글로 색슨, 노르만 등 다양한 외부세력이 침략한 결과로 각 지방마다 다른 민족, 다른 전통, 다른 관습을 가진 지역사회로 분화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윌리암의 정복으로 정치적으로 새로운 하나의 국가 형태를 이룬 잉글랜드는 법에 있어서 만큼은 지방마다 다른 관습법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영미법의 전통은 식민지에 존재했던 기존 관습법을 승계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주는 다른 식민지들과는 다르게 ‘Settlement’라는 방식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정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칼럼에서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Settlement’로 계속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어 있는 땅 – ‘Settlement’의 전제 조건

‘Settlement’라는 개념은 호주가 비어 있던 땅이라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국인이 1788년을 시작으로 이 땅에 정착하기 전 호주 대륙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없었기에 국가도 없었고, 따라서 이 땅을 다스리는 법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개념의 이면에 깔려 있는 논리인 것입니다. 앞서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대부분의 식민지들은 ‘정복’ 혹은 ‘할양’의 방식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영국의 침범 이전에 그 땅에 원주민들의 국가 혹은 정치공동체가 존재했고, 이 정치공동체를 운영하던 법이 식민지를 다스리는 법의 일부로 귀속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하고 기존의 영국법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에 반해서, 호주의 경우에는 영국인의 호주 상륙 이전에 이 땅을 다스리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영국법이 어떠한 이론적 변형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호주법으로 이식되었습니다. 그 결과, 영국법과 영국의 정치체제가 ‘호주’라는 국가를 형성하는 ‘주권 (Sovereignty)’의 원천적 근거가 되었으며, 이 역사적 인식이 호주 헌법이 제정된 1901년 까지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호주 헌법에는 호주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들어 있지 않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호주라는 국가 시스템이 호주 원주민의 주권과 영토권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드라마를 보면 원주민 자치구역이라는 것이 흔히 등장합니다. 말 그대로 일정한 지리적 영역 안에서 북미 원주민들이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지역입니다. 이 주권은 미국이나 캐나다의 연방정부와 각 원주민 자치 정부 사이의 조약으로 성립됩니다.

반면, 호주에서는 원주민에게 어떠한 주권이나 영토권이 인정되고 있지 않고 따라서 원주민의 자치권도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주의 시민 사회에서는 호주  원주민의 주권을 호주 헌법에 명문화하고 그 토대 위에서 호주 원주민 국가와 호주 정부 사이에 조약을 맺는 것을 목표로 하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캠페인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일 지금 어떤 나라가 한국을 침략하고 우리의 주권을 부정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다음 회에서는 현재 호주 헌법이 호주 원주민의 주권과 영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 호주 원주민의 인권을 제한하는데 쓰여질 수도 있다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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