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법률정보] S2 #2 호주헌법과 인종차별 01
시리즈 2 호주 헌법 #2 호주헌법과 인종차별 01 글: 알렉스 김 | 피츠로이 법률서비스 법무보조원 헌법 제51조 26항 이번 주에 제가... [우리동네 법률정보] S2 #2 호주헌법과 인종차별 01

시리즈 2 호주 헌법 #2 호주헌법과 인종차별 01

글: 알렉스 김 | 피츠로이 법률서비스 법무보조원

헌법 제51조 26항

이번 주에 제가 전해드리려던 내용의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호주헌법 제51조 26항은 호주연방의회가 어느 인종에 관해서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 특별법을 만들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 조항을 근거로 의회가 어느 특정 인종의 권리를 제약하는 법을 만들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래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만, 문제는 이 조항에서는 그 “특별법”이 어떤 성격의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이 조항의 문장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이 조항의 헌법적 효력을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어떤 법률 조항이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쓰여 있어서 그 의미를 알기 힘들 때, 법원에서는 이 조항을 해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게 됩니다. 그 중 잘 알려진 방법들 중 하나가 법치 (Rule of Law) 혹은 국제법 (International Laws)의 기본 원칙에 기대어 해당 법조항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의 호주헌법 제51조 26항을 기반으로 만들어 진 어떤 ‘특별법’이 만일 어느 특정 인종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라면, 이는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치 혹은 국제인권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기에 무효로 처리되거나 폐기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힌드마쉬 브릿지 법 (Hindmarsh Bridge Act)

그런데, 1998년 호주연방대법원 (High Court of Australia)이 위의 헌법 제51조 26항을 해석할 때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1997년 호주연방의회는 남호주 애들레이드 남쪽 지역의 힌드마쉬 섬 (Hindmarsh Island)을 원거주지로 하는 호주원주민들의 권리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은 힌드마쉬 브릿지 법을 만들게 되는데요, 이 법을 만든 헌법적 근거가 바로 위의 헌법 제51조 26항이었습니다. 따라서, 연방대법원 앞에 놓여진 질문의 요체는 연방의회가 위의 헌법 제51조 26항을 근거로 특정 인종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 헌법적으로 합당한가 아닌가 였습니다. 만약 이 질문이 독자 여러분 앞에 놓여진다면 어떻게 판단 하시겠습니까? 호주의회는 과연 호주원주민의 권리를 제한 할 수 있는 법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 하시겠습니까?

이해하기 힘든 판결

놀라운 것은 당시 6인의 대법관 중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한 사람은 단 한 명 뿐 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호주연방대법원은 호주의회가 호주헌법 제51조 26항을 근거로 특정 인종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 판례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물론 이 판례가 아직 유효하다고 해서 의회가 무작위로 인종차별을 허용하는 법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정부의 유사한 시도도 대개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호주헌법은 아직도 인종차별을 간접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1세기에 이런 법리가 실존한다는 것이 저는 아직 믿기지가 않습니다.

원래 저는 이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판례를 소재로 하여 호주에 사는 우리 한국인의 삶에 호주 헌법과 인종차별이 어떤 형태의 씨줄과 날줄로 엮일 수 있을 지 얘기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느닷없이 호주노동당 (Australian Labour Party: ALP)이 다음 연방하원선거와 관련하여 시드니의 한 선거구에서 인종차별적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시드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뉴스가 힌드마쉬 브릿지 사건으로 드러난 인종차별적 호주헌법 해석과 어떤 맥락으로 이어지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울러에서 들려온 뉴스

문제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호주노동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시드니 파울러 지역구에서는 원래 투 리 (Tu Le)라는 이름의 베트남계 이민 2세 여성변호사가 이번 회기를 끝으로 은퇴하는 노동당 의원의 뒤를 이어 다음 선거에 입후보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베트남과 중국계 인구가 40퍼센트에 이르는 이 지역의 인구비율을 고려하면 투 리의 입후보는 어쩌면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는,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정치적인 결정입니다. 아시아계가 대다수를 이루는 이 지역의 이익을 여기서 나고 자란 젊은 지역일꾼이 대변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노동당이 느닷없이 크리스티나 커닐리 (Kristina Keneally)라는 거물급 상원의원을 다음 하원선거에서 파울러에 공천하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집니다. 커닐리는 미국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결혼을 통해 2000년에 호주 국적을 취득하고, 뒤이어 남편의 노동당 커넥션을 통해 2003년 NSW 주의회에 진출하여 승승장구한 끝에 2009년 NSW 주총리가 됩니다. 2011년 NSW 주의회 선거에서 대패하여 주총리 자리를 잃은 커닐리는 방송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다가 2017년 보궐선거를 통해 연방의회에 진출하고 이듬해 연방상원의원에 지명된 이후 노동당의 리더 그룹 중 한명으로 부상했습니다. 결국 커닐리의 파울러 공천은 노동당이 다음 연방하원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커닐리를 차기 정부의 요직에 앉히기 위한 사전 포석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현재 호주 주류 정치인들의 현실 인식의 한계를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노동당의 당수인 안토니 알바니지 (Anthony Albanese)는 커닐리가 이민자 신분으로 NSW주지사를 거쳐 오늘의 성공에 이른 과정이 호주 사회의 인종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모범사례라고 하면서, 투 리에게는 다음 선거에 입후보할 기회를 포기하는 대신 밝은 미래가 주어질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한 술 더 떠서, 호주의 총리를 역임했던 거물 정치인인 폴 키팅 (Paul Keating)은, 지역사회의 시각에서는 투 리의 입후보가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이 지역에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는 그녀의 ‘좋은 의도 (Good Intention)’만으로는 부족하고, 따라서 커닐리처럼 파워 있는 정치인이 이 지역에 필요하다고 사탕발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망발인 것은 어린아이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첫째, 우리가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백인 주류 계층의 이해관계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한 것입니다. 커닐리가 이민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호주 백인 상류 사회의 일원인 남편을 통해 호주 정치에 안착한 사람입니다. 이민자라고 해서 다 같은 이민자가 아닙니다. 누구는 보트를 타고 호주에 오고, 누구는 보트를 들고 호주에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트를 들고 호주에 이민 온 사람이 보트를 타고 이민 온 부모 밑에서 온갖 차별을 뚫고 지역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한 젊은이를 밀어내고 다음 정권에서 권력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과연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목적에 부합한 것일까요?

둘째, 투 리가 이번에 입후보를 포기하면 그에게 밝은 미래가 주어질 것이라는 인식은 투 리가 정치를 하는 이유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실제는 그와 다릅니다. 투 리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지역변호사 입니다. 맥쿼리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이집트 카이로의 고아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NSW 베트남청소년협회의 리더 역할을 10년 이상 해오고 있으며, 이민자를 위한 무료법률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일류 로스쿨을 졸업하고 꽃 길을 걷다가 정계에 진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그녀에게 마치 금전거래를 하듯이 ‘밝은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것은 그녀가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좋은 의도를 왜곡하는 언사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키팅은 파울러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는 투 리의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함으로써 투 리가 ‘좋은 의도’ 외에는 별 능력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그녀는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 의도를 현실화 하기 위해 결코 녹록치 않은 지역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일 뿐더러,  30세의 젊은 나이에 뚜렷한 정치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전도유망한 지역 정치인 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대의 정치의 가장 바람직한 모델입니다. 이런 사실을 굳이 외면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가 파울러 지역에 이익을 가져다 줄 능력이 없다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그녀가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방해하는 비열한 언사입니다. 만약 그녀에게 연방의회 경험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면 키팅 같이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팔 걷고 그녀를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투 리를 돕지 않습니다. 그럼, 투 리는 누가 도와줘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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