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법률정보] S2 #3 호주헌법과 인종차별 02
시리즈 2 호주 헌법 #3 호주헌법과 인종차별 02 글: 알렉스 김 | 피츠로이 법률서비스 법무보조원 Kartinyeri v Commonwealth 저번 회에 이어서... [우리동네 법률정보] S2 #3 호주헌법과 인종차별 02

시리즈 2 호주 헌법 #3 호주헌법과 인종차별 02

글: 알렉스 김 | 피츠로이 법률서비스 법무보조원

Kartinyeri v Commonwealth

저번 회에 이어서 씁니다. 1998년 호주연방대법원 (High Court of Australia)이 호주 헌법 제51조 26항을 해석할 때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그 판례의 이름이 Kartinyeri v Commonwealth (1998) 195 CLR 337입니다. 영미권에서는 대개 재판의 당사자 이름을 판결문의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이 판례의 제목은 카티녜리라는 사람이 호주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제목 다음의 괄호 안 숫자는 판결이 난 연도를 말하고 나머지 숫자와 문자는 이 판결이 실린 판례집의 인쇄/편집 번호입니다. 앞으로 각종 판례를 보실 경우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소송은 열 권의 소설을 쓰고도 모자랄 만큼 너무나 흥미진진한 주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짧은 지면에 담으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될 것이니 본론만 간단하게 축약하겠습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1997년 호주연방의회는 애들레이드 남쪽 지역의 힌드마쉬 섬 (Hindmarsh Island)을 원거주지로 하는 호주원주민들의 권리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은 ‘힌드마쉬 브릿지법’을 만들게 되는데요, 연방의회가 이 법을 만든 헌법적 근거가 바로 호주 헌법 제51조 26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힌드마쉬 브릿지법’이 호주원주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법은 호주원주민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호주원주민의 헤리티지, 즉, 그들의 문화적 유산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다른 하나의 법률인 ‘원주민 헤리티지 보호법’ (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Heritage Protection Act) 이라는 법률의 적용을 일부 무효화하는 방식으로 그 목적을 달성합니다. 제가 “흥미롭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호주원주민의 헤리티지를 보호하는 이 법 역시 호주헌법 제51조 26항에 근거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호주의회는 호주헌법의 같은 조항을 근거로 서로 다른 성격과 목적을 가진 두개의 법률을 만들게 되는 셈인데, 그렇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이 아닐까요. 아니나다를까, 카티녜리라는 호주원주민여성을 대표자로 하여 호주시민사회가 연방대법원으로 끌고 간 이 소송의 핵심은 호주연방의회가 호주헌법 제51조 26항을 근거로 특정 인종, 즉, 호주원주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 헌법적으로 합당하냐는 질문입니다. 과연 호주연방대법원 판사들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판사 다섯명 – 엿을 자르는 것은 엿장수 맘

이 재판에서 판사 6명 중 5명은 ‘힌드마쉬 브릿지법’을 합헌으로 판단합니다. 그 논리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판사 5명 중 브레넌 (Brennan)과 맥휴 (McHugh)는 호주헌법 제51조를 근거’로 호주의회가 법률을 만들 수 있는 입법권이 어떤 특정한 법률을 만들 힘과 그 법률의 효력을 없앨 힘을 동시에 가지는 완전한 성격 (Plenary)의 권력이라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호주헌법의 제51조 26항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원주민 헤리티지 보호법’이 합헌인 한 편, 그 법의 적용을 부분적으로 제한하도록 만들어진 ‘힌드마쉬 브릿지법’ 또한 헌법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아리송하지 않습니까?

고드론 (Gaudron) 판사는 브레넌과 맥휴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한발 더 나갑니다. 그녀는 제26항이 “… 어떤 인종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특별법”이라고 쓰여진 것에 주목하면서, 이 조항에 근거해 만들어진 어떤 법이 합헌이 되기 위해서는 그 법률이 대상으로 하는 인종이 다른 인종과 구분되는 점 (혹은 차별성)과 연관되어 있어야 할 뿐더러, 그 법률 자체가 그 목적을 구현하도록 적절하게 맞추어 져야 한다 (“appropriate and adapted”) 라고 말합니다. 일견 대단히 복잡해 보이는 논리입니다만, 결론적으로는 호주의회가 헌법 제51조 26항을 근거로 어떤 법을 만들든 그 법리를 기술적으로 잘 구성하면 합헌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혀집니다.

판사 검모우 (Gummow)와 헤인 (Hayne)은 ‘힌드마쉬 브릿지법’의 합헌 여부가 호주원주민을 다른 인종과 다르게 취급하고 있는 지에 달려 있을 뿐, 호주원주민이 이 법으로 인해 얻게 되는 최종 결과는 이 법의 합헌 여부와 관계없다고 판단합니다. 큰 맥락에서는 앞서의 브레넌, 맥휴, 고드론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견해입니다. 당연히 이들은 ‘힌드마쉬 브릿지법’이 합헌이라고 판단합니다. 왜냐면 이 법이 호주원주민이라는 특정한 그룹을 다른 인종 그룹과 차별적으로 다루는 특별법이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설명합니다.

판사 한 명 – 엿 장수도 지킬 것은 지켜야

이들에 비해 커비 (Kirby) 판사는 다른 판단을 내 놓습니다. 그의 논리는 호주헌법 제51조 26항에서 제공하는 입법권이 어떤 특정 인종을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가져다 주는 법을 만들 수 있는 성격의 권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첫째, 헌법 제51조 26항은 1967년에 한번 개정되었던 조항입니다. 개정의 이유는 기존의 같은 조항이 호주원주민을 차별하는 법을 만드는 헌법적 근거로 악용되었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이 조항은 1967년 개정 당시의 취지를 살려 호주원주민 혹은 다른 소수인종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만드는 근거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호주헌법은 제국주의시대 의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이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주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현재의 시점으로 이해하고 재평가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커비는 헌법의 문장을 해석할 때 그 문장이 쓰여진 시점의 사회적 배경에 따라 해석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대 상황에 맞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제51조 26항의 헌법적 성격을 해석할 때는 1967년 헌법 개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호주와 국제사회의 변화하는 가치관이 더불어 반영되는 해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셋째, 법률 해석의 기본 원리의 하나로서, 어떤 법률이 제공하는 의미가 모호하거나 그 해석에 이견이 있는 경우 법원은 이 법률을 보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원칙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해석하여야 하며, 따라서 호주원주민의 권리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 ‘힌드마쉬 브릿지법’은 위헌이라는 것입니다.

호주헌법은 개정되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이 논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재판은 5:1의 결정으로 호주원주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힌드마쉬 브릿지법’이 합헌이라고 결론지어졌으며, 이 판례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결과적으로 호주의회는 호주헌법 제51조 26항을 근거로 어떤 특정 인종의 권리를 제약하는 법을 만들 수 있는 헌법적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호주원주민이 아니라 호주에 사는 한국인과 같은 소수 인종의 권리를 제한하는데 쓰인다면 어떻게 생각 하시겠습니까? 그런 일이 쉽사리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짐작은 하지만, 완전히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판례는 이론적으로나마 아직도 실질적으로 유효한 호주법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판례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호주헌법에 호주원주민의 권리를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각인해 놓는 것입니다 (Constitutional Enshrinement). 더 나아가 제51조 26항은 이 조항을 포함해 어떤 헌법 조항도 어떤 특정 인종을 차별하는 법을 만드는 근거로 쓰여질 수 없다고 다시 쓰여지는 게 바람직합니다. 현실적으로도 호주인의 절대 다수는 호주헌법에 원주민의 권리를 새겨 넣는 것에 대해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개정은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제일 큰 이유는 백인기득권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정치권의 비협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현재 호주인권위원회 (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 차기 위원장으로 로레인 핀리 (Lorraine Finlay)라는 보수법학자가 내정되어 있습니다. 핀리는 호주원주민 관련 이슈 뿐 아니라 여성인권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 퇴행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인사입니다. 학문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핀리 같은 사람의 활동이 보장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호주인권위원회는 인권 관련 법 집행과 사법적 판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기관입니다. 이를 총괄하는 위원장에 핀리 같은 사람을 주저없이 임명하는 것을 보면 호주헌법 제51조 26항을 근거로 호주원주민을 포함한 소수 인종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불가능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커비 판사의 판단에 동의합니다. 호주 헌법이 특정 인종을 차별하는 법을 만들 근거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상상을 더 이상 이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No comments so far.

Be first to leave comment below.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