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 러프 오헌(Jan Ruff O’Herne, 1923-2019) 백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인권 운동가 <br>나에겐 여성의 존엄성을 모범으로 보여주신 따뜻함이 가득하셨던 인생 선배 할머니.
젠 러프 오헌(Jan Ruff O’Herne, 1923-2019) 신문에서는 백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인권 운동가 나에겐 여성의 존엄성을 모범으로 보여주신 따뜻함이 가득하셨던 인생... 젠 러프 오헌(Jan Ruff O’Herne, 1923-2019) 백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인권 운동가 <br>나에겐 여성의 존엄성을 모범으로 보여주신 따뜻함이 가득하셨던 인생 선배 할머니.

호주인 ‘위안부’ 피해자 젠 러프 오헌 할머님은 만 96세의 생을 뒤로 하시고 19일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2005년 에들레이드에서 호주 국제 앰니스티(Amnesty International) 여성 인권 캠페인을 통해 처음 만난 젠 할머니와 멜번에 있던 나는 처음에는 펜팔처럼 오고 가는 손편지로 지난 14년동안 ‘위안부’ 인권 캠페인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할머님의 따님과 손녀가 ‘위안부’를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하는데 함께 하고 도와드렸다.

특히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 동행하면서 젠 할머님과 ‘우정’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2월에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청문회. 눈바람에 비행기편이 계속 취소되었지만 아슬아슬하게 할머님은 청문회에서 한국 피해자 할머님들과 함께 증언을 하실 수 있었고 미국 연방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해 7월 미국 하원은 일본정부에게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공식적이고 분명한 시인과 사과,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뉴스와 신문에 나오는 젠 할머님의 모습은 20년 넘도록 똑 부러진 발언, 항상 단정하고 우아한 옷차림, 부드러우면서 끈임없이 일본 정부를 향해 사죄를 요구하신 강인한 여성 운동가셨다. 할머니는 “나는 용서한다, 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90년대 일본 정부의 비공식 피해자 기금을 거절하시면서, 할머님의 요구는 ‘진실’과 ‘인권 훼손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을 정확히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할머니는 적십자와 국제 앰니스티와 같은 국제 기관과 캠페인하시며 꺼내기 어려운 아픔을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다른 여성에게 되풀이되면 안되기에. 오헌 할머님은 호주 국민훈장 수훈에 이어 카톨릭 교황과 네덜란드 여왕의 훈장을 받으실 만큼 여성인권에 대해 기여하신 공이 크셨다.

댁을 방문하는 나를 맞이해 주셨던 할머님은 벌써 이렇게 이루신 게 많은 큰 인물이셨지만, 한결같이 소박하고 따뜻하셨다. 할머님 부엌엔 늘 찻잔 두 잔과 비스킷이 가지런히 우리의 만남을 위해 준비돼 있었다. 늘 소꿉놀이 같은 설거지를 하는 나를 보고 말리셨지만 “할머니! 차만 얻어 마시고 더러운 설거지를 남기고 가면 제가 우리 엄마한테 혼날 거에요”라고 애교부리는 나에게 혼자 사시는 집에 “상큼한 바람 같다”고 귀여워해 주셨다.

또 이런 저런 옛날 이야기들 – 할머니가 쓰신 회고록 표지 흑백 사진은 전쟁 시작 전 인도네시아에 이미 많이 살고 있던 일본인 사진가가 찍어준 것이라거나, 먼저 떠나신 남편 톰 할아버지를 매일 그리워하시면서 전쟁 끝난 직후 멋진 영국 병사인 톰 할아버지와 달콤한 사랑 이야기 – 이런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시면서 나에게 너그럽게 본인 인생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곤 했다.

나처럼 철없는 20대가 켐페인을 같이 해달라고 요청했던 그 처음부터 할머님은 나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 주셨다. 늘 의사가 정확하셨던 할머님은 증언의 중요함을 아셨고 60년이 넘어도 떨쳐 버릴 수 없는 전쟁 속 성범죄의 기억을 토씨 하나하나 정확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처음 만난 80대 에도 식지 않고 뜨거우셨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쉬실 젠 할머니. 호주 텔레비전 뉴스 인터뷰 중 할머님의 말씀 한구절이 생각난다: “난 아베 총리의 공식 사죄를, 사는 동안 받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희망한다. (그 사죄를 받아야) 우리 여성들, 우리가 죽는 날 그 순간, 존엄성을 갖추고 떠날 수 있다.”

젠 할머님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인생 교훈을 유산처럼 남겨 주셨다. 여성의 존엄성은 그 어떤 가치보다 위에 있다는 것. 이 존엄성은 삶을 바쳐 지켜야 할 그런 가치가 있다는 것. 여성 인권 운동이란 이것을 함께 지켜 나가는 끝나지 않은 일인 것이다.

글 송애나(Anna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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