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백인 ‘위안부’ 공개 증언자, 젠 러프 오헌 할머니 타계
호주 ‘위안부’ 공개 증언자 젠 러프 오헌(Jan Ruff O’Herne, 1923-2019) 여사가 8월 19일 향년 96세로 타계했다. 오헌 여사는 애들레이드 자택에서 가족들이... 최초 백인 ‘위안부’ 공개 증언자, 젠 러프 오헌 할머니 타계

호주 ‘위안부’ 공개 증언자 젠 러프 오헌(Jan Ruff O’Herne, 1923-2019) 여사가 8월 19일 향년 96세로 타계했다. 오헌 여사는 애들레이드 자택에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오헌 여사는 1991년 ‘위안부’ 피해자로서 최초로 세상에 나와 공개적으로 피해자임을 밝힌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본 후 1992년 자신도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다.

(오른쪽부터) 2007년 호주 시드니 수요집회에 나선 박은덕 변호사, 송애나 당시 FWCA 공동대표, 오헌 할머니, 황우슈메이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사진제공: 박은덕 변호사

1923년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 (현재의 인도네시아) 세마랑(현재 자바)에서 태어난 오헌 여사는 2차 대전 발발 후 1942년 일본군이 침략하면서 가족과 다른 네덜란드인 여성과 아동 수천명과 함께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1942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기 직전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현재 인도네시아) 자바 반도엔간에서 찍은 사진. 사진: 호주전쟁기념관

1944년 2월 포로수용소에서 17세 이상 미혼 여성을 집합시킨 일본군은 이 중 오헌여사를 포함해 10명을 골라냈다. 이들 젊은 네덜란드 여성은 트럭으로 이송되었고 다음날 ‘위안부’로 끌려왔다는 것을 듣게 됐다.

오헌 여사는 일본군 성노예로서 당한 고통과 공포를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일본 전쟁 패망 후 네덜란드인들이 수용됐던 포로수용소에 진주한 영국군인 톰 러프(Tom Ruff)를 만난 오헌 여사는 1946년 결혼 후 영국에 정착했다가 1960년 호주로 이주했다.

1944년 오헌 여사는 인도네시아가 일본군에 점령 당한 후 2년간 포로수용소에 가족과 함께 수용되었다가 다른 네덜란드 미혼 여성 9명과 함께 ‘위안소’로 사용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주택으로 끌려갔다. 이 중 여성 3명은 다른 곳으로 끌려갔고 남은 7명이 서명한 흰 손수건이 캔버라 호주 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에 전시되어 있다.

오헌 할머니는 자신에게 가해진 잔악행위가 평생 자신을 괴롭혔지만 치욕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91년 故김학순 할머니의 TV 공개 증언을 본 후 같은 전쟁 중 성범죄 피해자들이 선택한 사죄와 정의, 보상을 향한 길에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할머니는 50년간의 침묵을 깨고 가족들과 호주지역 언론에 자신이 피해자임을 알렸다. 오헌 할머니는 공개 증언 후 타계 직전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같은 고통을 겪은 ‘위안부’ 피해자들과 활동을 같이했으며 전쟁 및 분쟁 중 여성 보호를 위해 지침없이 활동했다.

1992년 일본 국제청문회

할머니는 1992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참석,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2007년에는 미국 연방 하원 ‘위안부’ 결의안이 발의되어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와 함께 미하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주최로 열린 일본군 위안부 관련 결의안 관련 첫 청문회에 피해자로서 증언하기 위해 출석한 (왼쪽부터) 김군자, 이용수, 젠 러프 오헌 할머니 3명이 손을 잡고 있다. 사진: 정의기억연대 제공

‘위안부’ 할머니 세분의 증언 후 7월 미하원은 일본정부에 ‘위안부’ 정부 관여 인정, 사죄, 보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오헌 할머니는 ‘위안부’의 잔혹한 피해 실상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국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호주는 물론 뉴질랜드, 일본, 미국, 영국, 네덜란드를 포함 세계 각지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Japanese 'wartime sex slavery' survivors from Korea, Taiwan and Australia
오헌 할머니(오른쪽)는 2007년 ‘국제여성의 날’을 맞아 호주를 방문한 길원옥 할머니(한국, 왼쪽)와 황우슈메이 할머니(대만, 가운데)와 함께 시드니 일본영사관앞 집회에 참석했다. 사진제공: 이회정 회계사

오헌 할머니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국제 적십자, 국제 앰니스티, 유엔 인권위원회의 노력으로 2008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쟁 중 강간과 성폭력을 전쟁범죄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Jan Ruff O'Herne & Gil Won-ok
2009년 호주 연방의회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호주를 방문한 길원옥할머니와 함께한 젠 러프 오헌 할머니. 사진: 정의기억연대 제공
2018 한국어 출판 자서전 표지

오헌 여사의 자서전 ‘Fifty Years of Silence’는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중국어, 인도어 포함 6개국어로 번역됐으며 한국에서는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또한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호주 TV 로기상, 호주 영화협회(Australian Film Institute)상,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는 물론 일본에서도 상을 수상했다.

오헌 여사는 여성 인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네덜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오랑여 낫소 훈장, 2002년 호주국민훈장(AO)과 요한 바오로 2세에게 교황훈장을 수훈했다. 2004년에는 호주 정부에서 100주년 메달을 수훈했다.

오헌 할머니 타계 소식이 알려지자 고국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서는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유럽과 미국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기억했다. 정의기억연대는 “더 이상 전시성폭력이 일어나지 않고 세계 평화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박은덕 변호사는 지난해 6월 오헌 할머니 자택에서 마지막으로 생전 모습을 뵈었다. 사진: 박은덕 변호사 제공

염종영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실천 추진위원회(시소추)’ 대표는 “일제의 만행으로 겪어야 했던 자신의 고통을 미래 세대를 위해 당당히 밝히신 할머니의 강인함과 불굴의 용기를 기억”하겠다며 “아베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이 있을 때까지 시소추는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염 대표는 오헌 할머니가 “나비가 되시어 훨훨 날아 행복한 곳에서 머무르소서”라고 기원했다.

2000년대 중반 호주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하는 호주친구들(Friends of Comfort Women in Australia)’ 공동창립자 박은덕 변호사는 오헌 할머니 타계 소식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이 땅의 증인들이 이렇게 떠나신다”며 애통해했다. 박 변호사는 “앞으로 세대에 반드시 이 역사를 알려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난 2017년 애들레이드 자택에서 또박또박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박 변호사는 “호주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젠할머니의 뜻을 받들고 기억하며 더욱 더 열심히 활동해야한다”며 “기억하고 행동할게요 할머니!”라고 약속했다.

빅토리아주 한인회관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멜번 평화의 소녀상 건립위원회 (멜소위)’는 할머니 타계 소식에 “’위안부’ 피해자임을 당당히 알렸던… 용기에 감사의 박수와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이어 “시드니에 이어, 멜번, 오클랜드까지 소녀상을 세워… 용기를 기리고, 반전, 평화, 인권운동에 힘쓸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비키 챕먼(Vickie Chapman) 남호주 법무장관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인도네시아 침략기간 동안 겪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자신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50년간의 침묵을 깬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고 추모했다. 챕먼 장관은 오헌 여사의 “이야기가 절대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오헌 할머니의 유산이 절대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시소추는 27 일(화) 애들레이드에서 열리는 오헌 여사 장례식에 한인 조문단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전 FWCA 공동대표 송애나씨가 조사를 낭독한다. 또한 시소추는 8 월 24 일(토) 스트라스필드 한인교육문화센터 사무실 (208/4 The Boulevarde, Strathfield, 대한관광여행사 사무실 위층)에 분향소를 설치 오후 5 시부터 분향을 시작하며 저녁 7:30 분 추모식을 거행한다.

시소추는 “일본정부의 사과를 평생 요구하시다가 먼저 우리 곁을 떠나신 호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젠 할머님의 명복을 빌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4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정의를 위해 28년간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고통과 용기를 기억하고, 정의로운 문제해결의 과정에 많은 한인 동포들과 호주의 여러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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